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시 소개
백석 시인이 1938년에 발표한 시다. 이 시는 현실을 초월하고, 사랑에 대한 의지 그리고 소망을 노래한 작품이다. 나타샤라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이국정취가 담겨있는 시로서 토속적인 환경과 세계관에서 벗어나 현실 도피적인 유랑의식이 돋보이는 시로서 후기 시에 속한다고 보면 되겠다.
해석
나타샤를 사랑하지만 사랑을 이루기 힘든 가난 때문에 쓸쓸하게 소주를 마시면서 그리움과 고독을 달리는 화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나는 더러운 세상을 버리는 것이지 세상한테 진 것이 아니라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사랑의 순수함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그리고 화자는 나타샤가 결국에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과연?
개인적인 생각
여기서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생각이다.
우선 백석 시인의 직설적인 표현이 너무나도 놀랍다. 나타샤는 실제 그 당시 그가 사랑하는 여인으로 보이는데, 자꾸 나타샤가 본인을 사랑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봐도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 같으면 스토커기질이 보이는데, 실질적으로 스토커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드러나는 생각을 봐서는 충분해 보인다.
또한 시대마다 미인상이 다르다는 전제하에 저때의 흰 당나귀는 나름 이쁜 말의 상징이었을 테다. 그러니 나타샤를 자꾸 흰 당나귀와 겹치게 사용한 걸 테다. 그게 아니라면 나타샤의 얼굴이 당나귀 상일수도 있겠다.
가장 소름 돋는 건 마지막 소절이다. 흰 당나귀도 오늘밤에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 부분 나만 야한가? 사람들이 오갈데없이 내리는 눈에 나타샤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바도 달라지는 게 좋은 시다. 나는 이렇게 한줄평 하겠다. 광기에 서린 스토커가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여인을 납치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둘만의 세상을 만드려고 하는 범죄 스릴러물이 보인다.
*다음 포스팅을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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